인천에서 활동하던 중국 갱의 남한일기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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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대권방에 온 것을 환영한다
나는 다음 날이 되어서야 눈을 떴다.
목이 너무 말랐다. 마치 방금 사막을 걸어 나온 사람처럼 온몸의 수분이 모조리 말라버린 느낌이었다. 몸을 움직여 물을 마시러 내려가려다가 그만 배의 상처를 건드리고 말았다.
"아야..."
나도 모르게 신음이 새어 나왔다.
간호사처럼 보이는 젊은 여자가 문을 열고 들어와 급히 나를 침대에 눕혔다. 그러곤 뭐라고 뭐라고 쉴 새 없이 떠들어댔다. "...어쩌고저쩌고..."
대충 들어보니 지금은 쉬어야 하니까 함부로 움직이면 안 된다는 뜻인 것 같았다.
나는 말했다.
"목이 너무 마른데요. 여기 중국어 할 줄 아는 사람 있나요?"
그녀가 잠시 멍하니 나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어? 중국인이세요?"
나도 잠시 멍해졌다.
"당신도 중국인이에요?"
그녀가 웃었다.
"네. 저는 후난(湖南) 사람이에요."
나는 속으로 감탄했다.
역시 사람은 고향 말투를 쉽게 못 버리는 법이다.
그녀는 물을 건네주었다.
나는 벌컥벌컥 한 컵을 단숨에 들이켰다. 그제야 '가뭄 끝에 단비를 만난 기분'이 어떤 것인지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다 마신 뒤 컵을 다시 내밀며 말했다.
"한 잔 더 주세요."
하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복부 수술을 받았고, 마취 때문에 위와 장의 기능이 일시적으로 멈춘 상태라 음식을 먹거나 물을 너무 많이 마시면 위에 그대로 고여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다고 했다.
방금 마신 한 컵도 사실은 조금 많은 편이었다고 했다.
병원에서는 간호사의 말이 곧 진리다.
아무리 작은 개인 진료소라 해도 마찬가지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컵을 내려놓고 물었다.
"샤오마를 아세요?"
"당연하죠. 차이나타운 사람 중에 샤오마 형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저를 여기 데려온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에요."
"그럼 당신도 싸우다가 다쳐서 들어온 거네요?"
나는 헛기침을 한 번 하고 그 화제를 피한 뒤 물었다.
"혹시 샤오마한테 연락 좀 해줄 수 있을까요?"
"지금 당신한테 가장 필요한 건 휴식이에요. 다른 생각은 하지 마세요."
그녀는 이불을 잘 덮어 주고는 내 이마를 짚어 열을 확인했다.
문을 닫으며 뒤를 돌아 살짝 미소를 지었다.
"무슨 일 있으면 언제든 불러요. 제 이름은 정윤아예요."
정윤아.
그게 한국 이름인지 중국 이름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지막에 보여 준 그 미소는 정말 달콤했다.
눈빛에는 정이 가득했고, 순간 타국에서 여자라도 한번 꼬셔 보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다.
하지만 금세 정신을 차렸다.
인생에는 흔한 세 가지 착각이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휴대폰이 진동한 것 같고.
누가 문을 두드린 것 같고.
그리고 그녀가 나를 좋아하는 것 같다는 착각.
정윤아가 나가자마자 라오빵즈가 돌아왔다.
비닐봉지를 하나 들고 있었는데 안에는 먹을 것이 가득 들어 있었다.
내가 깨어난 걸 보더니 무척 기뻐하며 금방이라도 달려들 기세였다.
나는 급히 말했다.
"빵즈 형, 안 돼요. 상처 아파요."
그제야 그는 걸음을 멈추고 싱글벙글 나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의 이마에는 길게 붕대가 붙어 있었다.
나는 놀라 물었다.
"빵즈 형도 다친 거예요?"
"칼에 한 번 베였어. 다행히 빨리 피해서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눈을 다칠 뻔했지."
"젠장."
내가 말했다.
"이건 거의 얼굴 망가진 거 아니에요? 이제 여자들은 어떻게 꼬시려고요?"
그가 크게 웃었다.
"하하, 네 빵즈 형이 얼굴로 먹고사는 사람이냐? 얼굴 가리고도 여자 꼬실 수 있다."
그러곤 웃으며 말했다.
"어제 안 의사가 치료해 줬어. 나흘이나 닷새 정도면 실밥 뽑고 흉터도 안 남는대. 그러니까 한국 성형 기술이 대단하다는 거지. 이런 작은 의원만 봐도 알 수 있잖아."
"안 의사요?"
"어제 너 수술해 준 사람 말이야. 진짜 네 목숨을 살려 준 사람이야."
"너 모르지? 네가 여기 실려 왔을 때는 이미 쇼크 상태였어. 피가 얼마나 쏟아졌는지... 배의 상처가 어린애 입처럼 벌어져 있었고, 젠장, 창자까지 밖으로 튀어나왔는데 그걸 손으로 다시 밀어 넣더라고..."
나는 급히 말을 끊었다.
"빵즈 형, 그만해요."
그 장면은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야, 이 자식아. 어젯밤에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네가 못 살아날 줄 알았다니까. 그런데 하루 만에 눈을 뜰 줄이야. 마취도 풀렸지? 어때, 많이 아프냐?"
"아프죠. 안 아플 리가 있어요. 쑤시고 찢어질 것 같아요."
"자, 담배 한 대 피워. 좀 덜 아플 거다."
그는 비닐봉지에서 담배 한 갑을 꺼내 뜯으며 말했다.
"한국 담배 맛도 한번 봐."
그의 두 눈 밑이 새까맣게 꺼진 것을 보니, 밤새 한숨도 못 자고 꼬박 내 곁을 지킨 게 분명했다.
타국에서 이렇게 큰 부상까지 입고 나니 마음이 유난히 약해졌다. 코끝이 시큰해지고 눈시울이 붉어졌다.
"빵즈 형... 미안해요. 걱정 끼쳐서..."
"젠장, 그런 소리를 왜 해! 내가 널 데리고 왔는데, 다시 데리고 돌아가지 못하면 그게 진짜 미안한 거지!"
라오빵즈는 담배에 불을 붙여 내 입에 물려 주었다.
눈물이 나려는 걸 참기 위해 나는 힘껏 한 모금을 빨았다.
"아건,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냐?"
담배를 피우며 라오빵즈가 물었다.
"무슨 계획이요?"
"이번 일은 끝났고, 나머지 돈도 내가 대신 받아 놨어. 우리 둘이 가진 돈을 합치면 몇만 위안 정도는 된다. 상처가 다 나아서 퇴원하면 그다음엔 어떻게 할 생각이냐는 거지."
"빵즈 형, 우리 귀국 안 해요?"
그는 담배만 피울 뿐 내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무언가를 계속 생각했다.
담배 한 개비를 다 피운 뒤에야 꽁초를 비벼 끄며 입을 열었다.
"샤오마가 며칠 안에 온대. 우리랑 상의할 일이 있다더라."
나는 그의 표정을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빵즈 형... 설마 돌아갈 생각이 없는 건 아니죠?"
"아냐, 그런 뜻은 아니야."
그는 짜증스러운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은 그런 생각하지 말자. 샤오마가 오면 그때 이야기하자. 넌 괜한 생각 말고 상처나 잘 치료해."
라오빵즈는 그날도 하루 종일 내 곁을 지켜 주었다.
내 상태가 괜찮다는 걸 확인한 뒤 밤이 되자 잠잘 곳을 찾아 나갔다.
혼자 병실에 누워 낮에 나눴던 이야기를 곱씹다 보니 머릿속이 온통 뒤죽박죽이었다.
저녁 여덟 시인지 아홉 시쯤 되었을 때 정윤아가 들어와 내 상처를 소독해 주었다.
약을 다 갈아 주고 나가려는 순간 나는 살며시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왜요?"
그녀는 몸을 돌려 고개를 숙이며 물었다.
길게 늘어진 머리카락이 내 뺨을 스치자 간질간질했다.
"윤아, 한국에 있으면서...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 해 본 적 있어?"
그녀는 잠시 침묵했다.
대답 대신 다른 질문을 던졌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가 뭔지 아세요?"
"뭔데요?"
"<바람의 파이터>요."
"나도 봤는데... 그렇게까지 좋은 영화인지는 모르겠던데."
"전 영화 속 한 대사가 좋아서요."
"무슨 대사요?"
"주인공 최배달이 가라테 고수에게 도전하러 갔을 때, 그 고수가 이렇게 묻죠.
'죽으면 네 시체는 어떻게 할 거냐?'
최배달이 뭐라고 대답했는지 기억하세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본 지 너무 오래돼서 기억이 나지 않았다.
"최배달은 이렇게 말했어요.
'푸른 하늘 아래 아무 데나 버려 두시오.'"
한국에는 고향을 떠나 살아가는 중국인이 많다.
중국 말투를 쓰고, 중국식 생활을 하면서도 끝내 귀국하지 않고 타국에서 평생을 살아간다.
나는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혹시 언젠가 이곳에서 죽게 된다면...
조상 묘도 없고,
위패도 없고,
가족도 없다.
바람에 흩날리는 한 줌의 모래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왠지 두려워졌다.
어쩌면 나만 이렇게 생각하는 걸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바닥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미 그런 것쯤은 오래전에 초월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의원에서 꼬박 일주일을 누워 지낸 뒤에야 조금씩 기운을 되찾았다.
그 일주일 동안 라오빵즈는 내 곁을 떠나지 않고 극진하게 간호해 주었다.
내가 정말 여기서 칼에 찔려 죽었더라면, 그는 평생 후회했을 것이다.
안 의사는 매일 오전마다 와서 상처를 확인했다.
주로 칼자국이 감염되지 않았는지만 살폈다.
그는 거의 나와 말을 하지 않았다.
눈빛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마른 체격에 턱에는 듬성듬성 수염이 나 있었고, 아무리 봐도 어딘가 퇴폐적인 분위기가 풍겼다.
상처를 살피는 손길도 거칠었다.
그날 밤 내 배 속에 손을 집어넣어 상처를 확인했던 사람이 분명 그였을 거라고 나는 확신했다.
이 의원은 크지 않았다.
안 의사와 정윤아, 두 사람이 대부분의 일을 맡고 있었다.
주로 입술 문신이나 쌍꺼풀 수술 같은 간단한 시술을 했고, 나 같은 환자는 거의 대공사에 속했다.
한국의 성형 산업은 정말 대단했다.
이렇게 작은 의원에도 매일 손님이 찾아왔다.
나중에 한국에서 오래 지내고 나서야 사람들이 왜 그렇게 성형에 열을 올리는지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한국인이 섬세한 민족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한국 토박이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송강호처럼 납작한 큰 얼굴에 작은 눈, 낮은 코, 두툼한 입술을 가진 경우가 많았다.
그게 이들의 혈통에서 가장 대표적인 특징이었다.
이런 나라에서 성형 산업이 발달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중국에는 한국 배우를 좋아하고 동방신기나 Super Junior 같은 아이돌을 숭배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보면 친아버지보다 더 반가워하면서도 그들이 성형했다는 사실만큼은 절대 믿지 않는다.
어쩔 수 없다.
시대마다 자기만의 맹목적인 사람들이 있는 법이니까.
어느 날 안 의사가 상처를 갈아주고 있을 때였다.
너무 심심했던 나는 말을 걸었다.
"안 의사도 중국인이죠?"
"그렇다고도 할 수 있지."
그는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대답했다.
"'그렇다고도 할 수 있다'는 건 무슨 뜻이에요?"
내가 다시 묻자 그가 담담하게 말했다.
"내 몸에는 중국인의 피가 흐르지만, 중국에서 살아본 적은 없어."
"그럼 화교네요? 그래도 같은 중화민족이잖아요. 전에 영어 하는 거 들었는데 정말 유창하던데... 어디에서 자랐어요?"
그는 더 이상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오로지 상처를 소독하고 약을 갈아주는 데만 집중했다. 나는 조금 김이 빠지는 느낌이었다.
사실 사람마다 과거를 파고들어 보면 저마다 숨겨진 전설 같은 이야기가 하나씩은 있다. 마치 나중에 내가 귀국한 뒤, 살던 아파트 단지에서 자주 보던 한 폐지 줍는 아주머니처럼 말이다.
그 아주머니는 오십이 넘은 나이였는데, 보통 폐지 줍는 사람들과는 달랐다. 걸을 때는 한눈팔지 않고 당당했으며, 물건을 거둘 때도 자기 주장이 확실했다. 절대 사람들과 흥정하지 않았다. 팔고 싶으면 팔고, 말면 말라는 식이었다.
한 번은 아파트 단지에서 주민과 경비원이 크게 싸운 적이 있었다. 맥주병과 벽돌이 날아다니고, 심지어 삽까지 등장해서 하마터면 사람이 죽을 뻔한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그 아주머니는 아무렇지도 않게 삼륜차를 끌고 나와 폐지를 주웠다. 싸움판 한가운데를 지나가면서도 마치 아무 일도 없는 사람처럼 행동했다.
나중에야 알게 됐다.
그 아주머니는 젊었을 때 이 지역 최대 조직폭력배 두목이었던 ‘바오싼(鲍三)’의 여자였다고 한다.
바오싼이 총살당한 뒤, 원한을 가진 사람들이 계속 찾아와 시비를 걸었다. 결국 참다못한 아주머니는 가장 심하게 날뛰던 원수 한 명을 식칼로 쓰러뜨렸다. 거기서 끝나지 않고 그 사람의 발목 힘줄 두 개까지 끊어버렸고, 끊은 뒤 라이터로 지져버려 병원에 갔을 때는 도저히 봉합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그 사람은 결국 평생 장애를 안고 살게 됐다.
그 사건 이후로는 아무도 다시는 그 아주머니에게 시비를 걸지 못했다.
하지만 아주머니 역시 이후 감옥에 들어가 십 년 넘게 살았고, 출소한 뒤에는 폐지를 주우며 조용히 살아가고 있었다.
그래서 말이다.
사람은 절대로 주변의 누군가를 얕봐서는 안 된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대단함을 마음 깊은 곳에 숨겨두고 살아간다.
나는 예전에 폐지를 팔 때 그 아주머니에게 가격 흥정을 해본 적이 없다는 게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자면, 만약 내 인생의 궤도를 처음으로 바꾼 일이 라오빵즈의 말을 믿고 그와 함께 밀항으로 한국에 들어오는 이 ‘도둑배’에 올라탄 것이었다면,
두 번째로 내 인생을 바꾼 사건은 바로 이번 입원이었다.
이 일은 나를 한국의 대륜회(대륙계 중국인 조직)의 늪 속으로 점점 더 깊이 빠져들게 만들었다.
안 의사가 내 상처 처리를 막 끝냈을 때, 라오빵즈가 샤오마를 데리고 나를 찾아왔다. 그 뒤에는 그 여자 살인귀 나미도 따라와 있었다.
그 여자의 눈빛은 정말 불편했다. 누구를 보든 항상 차갑고 무표정했다. 뭐랄까, 지나치게 잘난 척하고 거만한 느낌이었다. 나는 늘 저 여자가 약간 중2병 같은 구석이 있다고 생각했다.
“야, 안. 요 며칠 어떻게 지냈냐? 듣자 하니 밤마다 술에 취했다던데, 밖에 나가서 여자 찾으러 다닌 건 아니지? 하하하. 너도 알잖아. 예쁜 여자들 전부 성형으로 만들어진 거야. 가슴이랑 엉덩이도 다 가짜라니까. 절대 믿으면 안 돼. 세게 만져보면 안에 실리콘까지 느껴진다니까……”
샤오마는 안 의사에게 엄청 친근하게 말을 걸었다.
처음 봤을 때는 몰랐다. 이 녀석이 이렇게 말이 많은 인간일 줄은.
샤오마의 열정적인 인사에도 안 의사는 그저 무덤덤하게 고개만 한 번 끄덕이며 대충 받아줬다.
그런데 안 의사와 나미가 서로 눈을 마주치는 순간, 나는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이 두 건방진 인간 사이에는 분명 뭔가 맞지 않는 구석이 있었다.
샤오마 역시 머리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그날 패싸움 때 여러 군데 베였지만, 다행히 이 녀석은 워낙 몸이 튼튼해서 이틀 쉬고 나니 멀쩡해 보였다.
그는 내 배에 막 치료한 상처를 보더니 얼굴을 찡그리며 물었다.
“안, 내 친구 상처 괜찮은 거 맞아?”
“별문제 없어. 상처도 감염되지 않았고, 지금 잘 아물고 있어.”
안 의사는 그들을 한 번 바라보더니 말했다.
“나는 먼저 나가볼게. 너희끼리 이야기해.”
“야, 오늘 밤 시간 되면 구룡루 와. 내가 짜장면 사줄게.”
샤오마가 안 의사에게 소리쳤다.
안 의사는 대답하지 않고 손만 한 번 흔든 뒤 문을 닫고 나갔다.
나는 침대에 누운 채 샤오마와 나미를 바라봤다.
이 두 사람이 나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온 건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그들이 나와 이야기하려는 일은 분명 이미 라오빵즈와 먼저 이야기를 나눴고, 어느 정도 합의까지 끝낸 일이었다.
홍콩 무협 영화를 좋아하던 김대봉은 비록 이번 싸움에서 패배했지만, ‘청동파’의 기반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이번 작은 좌절은 그저 그의 세력 확장을 잠시 막아선 것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후(犼)’는 반드시 자신의 세력을 키워야 했다.
매번 큰 싸움이 벌어질 때마다 해외에서 중국인들을 불러오는 ‘공수부대 방식’으로 해결할 수는 없었다.
그 방식은 비용도 너무 많이 들고, 위험도 컸다.
아무리 그래도 한국의 해양경찰이 만만한 존재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김대봉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자.
이것 역시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다.
조직 세계에서는 그를 “백원호(白原虎)”라고 불렀다. 이 별명은 결코 그냥 붙은 것이 아니었다.
김대봉의 출신은 그리 좋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는 북한에서 탈출해 온 ‘탈북자’였다. 하지만 고위층 출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한국 사회에서 환영받지 못했다. 그저 한국에서 겨우 굶어 죽지 않을 정도로 살아가는 수준이었고, 사회적 지위라는 것은 애초에 기대할 수도 없었다.
김대봉은 한국 경기도의 한 작은 동네인 백원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릴 때부터 세상에 나와 부딪치며 살았다. 그리고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특유의 참고 버티는 기질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생각해 보면 그렇다.
보통 사람이 탈북자가 될 수 있을까?
북한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중국에서 밀항해 한국으로 오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붙잡히면 변명의 여지도 없다. 바로 총살이고, 심지어 가족들까지 함께 죽을 수 있다.
그러니 탈북이라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내가 한국에서 오래 살다 보니 몇 명의 탈북자들을 만나본 적이 있다.
그들에게서 북한에서 겪었던 비참한 이야기들을 들었다.
사실 가장 비참한 사람들은 국경을 넘다가 붙잡힌 사람들이 아니었다.
진짜 끔찍한 사람들은 이미 탈출에 성공했지만, 어느 나라에 의해 다시 북한으로 송환된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어떤 나라가 국경선에서 사람을 북한 측에 넘겨주면, 그 즉시 북한 군인들에게 넘겨지고 총살을 당한다고 했다.
그들은 압록강변에 무릎을 꿇고 평양 방향을 바라보게 한 뒤, 총살하기 전에 이런 질문까지 한다고 했다.
“배부르게 먹고사는 것이 조국보다 중요하단 말인가?”
나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뼛속까지 서늘한 슬픔을 느꼈다.
왜냐하면 그들을 총으로 쏘는 사람들, 그들의 생사를 결정하는 사람들은 이미 배불리 먹고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의 목숨을 빼앗으면서도 그렇게 당당하게 질문할 수 있었던 것이다.
북한 사람들에게서 보이는 그 특유의 인내심과 억눌린 성향은 아마도 그런 환경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리라.
북한 혈통을 이어받은 김대봉은 열네 살 때부터 세상에 나와 떠돌기 시작했다.
어느 날 작은 술집에서 지역 불량배들에게 시비가 걸렸고, 술병으로 머리를 맞아 피를 흘렸다.
하지만 김대봉은 병원에 가서 상처를 치료하지도 않았다.
그는 칼 한 자루를 들고 술집 밖에서 그들을 기다렸다.
무려 서너 시간 동안.
그 불량배들이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술집에서 나왔을 때, 김대봉의 머리에서 흐른 피는 이미 옷 전체를 흠뻑 적실 정도였다고 한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 정도 출혈이면 이미 쓰러졌을 것이다.
하지만 김대봉은 버텼다.
이를 악물고 칼을 움켜쥔 뒤, 그 무리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단숨에 대여섯 명을 쓰러뜨렸다.
남은 두 명은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눈에서 짐승 같은 빛을 내뿜는 김대봉을 보고 그대로 겁에 질렸다.
그들은 바닥에 주저앉아 기어가지도 못했다.
그 사건 이후 김대봉은 백원동에서 단숨에 이름을 알렸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그를 두려워하며 모두 “백원호”라고 불렀다.
그런 김대봉 같은 성격의 사람이 중국인 거리에서 이렇게 큰 굴욕을 당하고 가만히 있을까?
맹 형님이 이끄는 중국인 조직 ‘후(犼)’는 조선 혈통을 가진 현지 조폭 두목의 미친 듯한 반격에 직면하게 됐다.
이런 상황에서 맹 형님에게 필요한 것은 힘이었다.
‘백원호’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는 더 많은 힘, 더 많은 사람을 모아야 했다.
그래서 샤오마가 나에게 자신들의 조직에 들어오라고 권유했던 것이다.
그들과 함께 “큰일을 도모하자”는 이유로.
물론 이런 복잡한 사정들은 모두 훗날 내가 하나씩 알게 된 것들이다.
당시 라오빵즈가 나를 설득하며 했던 말은 단 한마디뿐이었다.
“아건아. 사람이 평생 살면서 몇 번 찾아오는 중요한 기회를 잡지 못하면, 정말 끝이다. 결국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지나가 버리는 거야. 생각해 봐라. 우리 가슴속에 끓는 피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쓰는 게 아니겠냐?”
나는 라오빵즈를 원망하지 않는다.
정말 원망하지 않는다.
그 역시 반평생 뜻을 이루지 못하고 살아온 사람이었다.
하지만 마음속에는 큰 뜻을 품고 있었다.
내가 나중에 알게 된 이런 복잡하고 얽힌 배경들은 그때의 라오빵즈도 몰랐다.
그는 단지 자신에게 마음껏 피와 열정을 쏟아부을 수 있는 무대 하나가 필요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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