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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인 수선전 -탁령(濁靈)의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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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2026-09-10 09:20 22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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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버려진 돌과 녹슨 잔

기산(岐山)의 가을은 유독 혹독했다. 열일곱의 진운(陳雲)은 약초꾼들이 쳐다보지도 않는 험준한 절벽을 기어오르고 있었다. 그의 손가락 끝은 이미 피로 물들어 있었고, 해진 무명옷 사이로 살을 아리는 칼바람이 파고들었다.

"이 빌어먹을 세상, 평범하게 태어난 게 죄란 말인가."

진운은 침을 탁 뱉었다. 이 대륙, 선대륙(仙大陸)은 영근(靈根)을 가진 자들이 지배하는 곳이었다. 영근이란 선천적으로 천지의 영기를 받아들일 수 있는 그릇을 말했다. 금(金), 목(木), 수(水), 화(火), 토(土)의 오행 중 단 하나나 두 개의 정순한 영근을 가진 자들은 천재라 불리며 선문(仙門)의 직계 제자로 들어갔다.

하지만 진운은 오행의 기운이 모두 뒤섞인, 선문에서 가장 천시하는 '오행위영근(五行僞靈根)'이었다. 영기를 받아들여도 밑 빠진 독처럼 새어나가는, 그야말로 '선인이 될 수 없는 범인(凡人)'의 상징이었다. 삼류 방파인 벽계파(碧溪派)에서 잡역부로 일하며 매질을 당하던 그가 이곳까지 온 이유는 단 하나였다. 절벽 틈새에서 자란다는 십년생 '청혈초(靑血草)'를 구해 은 한 냥이라도 벌기 위해서였다.

스스슥.

그때 손을 뻗은 바위 틈새에서 차가운 감촉이 느껴졌다. 약초가 아니었다. 흙먼지에 뒤덮인 채 박혀 있는 조그만 흙잔이었다. 투박하기 그지없고, 군데군데 이가 나간 볼품없는 모양새였다.

"뭐야, 겨우 이런 쓰레기인가."

진운은 실망하며 잔을 던져버리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잔 바닥에 새겨진 기이한 룬 문자가 그의 핏방울을 흡수하듯 붉게 빛났다. 동시에 그의 뇌리에 거대한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탁(濁)한 그릇이야말로 만류(萬流)를 담는 바다가 되리니.

"아악!"

진운은 극심한 두통에 머리를 감싸 쥐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 잔은 온데간데없고 그의 오른손 바닥에 잔 모양의 검은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평생 단 한 방울의 영기도 머금지 못하던 그의 단전(丹田)에 미약하지만 따스한 기운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제2장: 이면(裏面)의 복선

한 달 후, 벽계파의 하급 제자 처소.

진운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숨을 들이쉬었다. 손바닥의 문신이 은은하게 발열하며 주변의 탁한 영기마저 빨아들였다. 본래 수선계의 상식으로 '탁기(濁氣)'를 흡수하는 것은 주화입마로 향하는 자살 행위였다. 오직 정순한 '청기(淸氣)'만을 골라 흡수해야 했다.

그러나 이 기이한 잔의 문신은 달랐다. 세상의 온갖 더럽고 뒤섞인 탁기를 빨아들인 뒤, 진운의 단전 안에서 가장 순수한 다섯 가지 오행의 정수로 정제해 내고 있었다. 위영근(僞靈根)이라 불리던 그의 '뒤섞인 체질'이, 오히려 온갖 기운을 가림 없이 흡수하는 최고의 장점으로 뒤바뀐 순간이었다.

그는 벌써 수선(修仙)의 첫 단계인 연기기(練氣期) 3층에 도달해 있었다. 한 달 만에 이룬 성취로는 선문의 천재들과 맞먹는 속도였다.

"진운! 이 게으른 놈이 어디 숨어 있느냐!"

문이 거칠게 열리며 벽계파의 외문 집사, 마가(馬哥)가 걸어 들어왔다. 마가는 탐욕스러운 눈빛으로 진운을 내려다보았다.

"사형, 무슨 일이십니까?"
"장문인께서 부르신다. 최근 기산 주변에 영수(靈獸)의 출몰이 잦아져, 외문 잡역부들을 징집해 고기방패... 아니, 수색대로 쓰기로 했다. 채비를 갖추어라."

진운은 고개를 숙였지만, 눈빛은 차갑게 가라앉았다. 벽계파는 표면적으로는 의로운 협객들의 방파를 표방했지만, 속은 썩을 대로 썩어 있었다. 특히 최근 장문인인 현기 도인이 연수(延壽)를 위해 사악한 마공을 익히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수색대라니. 무언가 숨기는 게 있어.'

진운은 짐을 챙기며 방바닥 밑에 숨겨둔 낡은 서첩을 품에 넣었다. 그것은 그가 잔을 얻었던 절벽 근처의 동굴에서 발견한, 수백 년 전 멸망한 대종파 '태황종(太皇宗)'의 파편이었다. 서첩에는 짧은 경고가 적혀 있었다.

―기산의 지하에는 아홉 개의 고리가 묶인 용이 잠들어 있으니, 벽계의 물이 핏빛으로 물들 때 봉인이 풀리리라.

벽계파의 이름에 들어가는 '벽계(碧溪)'. 이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제3장: 피로 물든 벽계

기산의 깊은 계곡, 짙은 안개가 자욱했다. 수색대에 동원된 서른 명의 잡역부들은 공포에 질려 있었다. 진운은 대열의 가장 뒤쪽에서 숨을 죽인 채 손바닥의 문신을 발동시켰다. 잔의 영능 덕분에 그의 오감은 무인들보다 수십 배는 예리해져 있었다.

"멈춰라."

진운이 중얼거림과 동시에, 전방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으아악! 괴, 괴물이다!"

안개 속에서 나타난 것은 거대한 늑대의 형상을 한 영수였지만, 무언가 이상했다. 늑대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고, 온몸에서 검은 마기(魔氣)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것은 자연적인 영수가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강제로 마화(魔化)된 괴수였다.

"모두 검을 뽑아라!"

집사 마가가 소리쳤지만, 정작 자신은 뒤로 물러섰다. 괴수가 사람들을 가차 없이 찢어발기기 시작했다. 피가 계곡의 흐르는 물로 스며들었다. 순간, 진운은 대지 깊은 곳에서 거대한 진동을 느꼈다. 품속의 태황종 서첩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벽계의 물이 핏빛으로 물들 때... 장문인은 일부러 우리를 이곳으로 보내 피를 흘리게 한 것이다!'

진운은 장문인의 목적이 수색이 아니라 '제물'임을 깨달았다. 마가는 이미 도망치고 없었다. 괴수가 이쪽을 향해 돌진해 왔다. 연기기 3층의 힘으로는 저 마화된 괴수를 이길 수 없었다.

진운은 침착하게 손바닥을 대지에 댔다.

'탁령의 잔이여, 저 괴수의 마기와 이 땅의 탁기를 모두 빨아들여라!'

우우웅!

오른손의 문신이 폭발적인 흡입력을 발휘했다. 괴수의 몸에서 뿜어 나오던 검은 마기가 제어력을 잃고 진운의 손바닥으로 빨려 들어왔다. 괴수는 고통에 울부짖으며 몸을 떨었고, 진운의 단전은 부서질 듯한 고통에 휩싸였다. 엄청난 양의 탁기가 순식간에 정순한 오행의 영기로 변환되며 그의 경지를 끌어올렸다.

연기기 4층... 5층... 그리고 6층!

"하압!"

진운은 바닥에 떨어진 장검을 주워 무섭게 내질렀다. 영기가 실린 검끝이 괴수의 목을 정확히 꿰뚫었다. 괴수가 쓰러지자, 진운은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단 한 번의 전투로 경지가 세 단계나 상승했지만, 기쁨보다 두려움이 앞섰다.

쿠구구구!

계곡의 물이 완전히 붉어지며, 땅바닥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지하에서 거대한 석문(石門)이 솟아올랐다. 석문에는 '태황종 보고(寶庫)'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제4장: 선택과 탈태환골

"과연... 태황종의 예언이 맞았구나!"

어둠 속에서 손뼉을 치며 걸어 나오는 인물이 있었다. 벽계파의 장문인, 현기 도인이었다. 그의 얼굴은 반쯤 해골처럼 흘러내려 있었는데, 이는 마공의 부작용이 분명했다. 그 뒤에는 비굴하게 웃고 있는 마가가 서 있었다.

"진운, 네 이놈! 감히 장문인님의 대업을 방해하려 하느냐!" 마가가 소리쳤다.
"방해라니요? 이 잡역부 소년이 아니었다면 피가 부족해 문이 열리지 않았을 걸세."

현기 도인의 눈이 진운의 오른손을 향했다.

"소년아, 네 몸에서 느껴지는 영기가 기이하구나. 오행위영근의 쓰레기가 어떻게 한 달 만에 연기기 6층이 되었지? 기연을 얻었군. 그 손에 있는 것을 내놓아라."

진운은 깨달았다. 여기서 순순히 응해도 어차피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것을. 그는 범인으로 태어나 멸시받던 시절을 떠올렸다. 강자에게 굴복하고 목숨을 구걸하던 삶은 이제 끝내야 했다.

"원하신다면... 가져가시지요!"

진운은 석문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잔의 영능으로 석문의 틈새로 흘러나오는 순수한 오행의 기운을 감지한 뒤였다. 그는 문틈으로 몸을 던졌다.

"건방진 놈!"

현기 도인이 허공을 향해 장풍을 날렸다. 거대한 검은 손바닥이 진운의 등을 강타했다. 연기기 6층의 신형으로 축기기(築基期) 고수의 일격을 버티기는 무리였다. 진운은 피를 토하며 석문 안의 어둠 속으로 추락했다.

쿵! 하고 석문이 다시 닫혔다.


제5장: 향후 여정의 서막

어두운 지하 보고의 바닥. 진운은 빈사의 상태로 누워 있었다. 오장육부가 뒤틀렸고 의식이 흐려져 갔다.

'이렇게 끝나는 것인가...'

그때, 그의 손바닥에 있던 잔의 문신이 완전히 분리되어 허공에 떠올랐다. 잔은 지하 보고 중앙에 놓인 거대한 황금색 액체, '태황천수(太皇天水)'를 향해 날아갔다. 수백 년 동안 모인 대종파의 정수가 잔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잔은 다시 진운의 입가로 다가와 그 정수를 쏟아부었다.

오장육부가 재구성되고, 뼈가 부러졌다 다시 붙는 극통이 찾아왔다. 탈태환골(奪胎換骨)이었다. 뒤섞여 있던 오행의 위영근이, 이제는 하늘의 모든 기운을 다스리는 '혼돈성체(混沌聖體)'로 진화하고 있었다. 그의 경지는 연기기 대원만을 넘어, 마침내 스스로의 힘으로 축기기(築基期)의 벽을 깨부수었다.

눈을 뜬 진운의 눈동자에는 오색의 광채가 감돌았다. 그의 앞에는 태황종의 마지막 전승이 담긴 한 자루의 부러진 검과, 신비로운 지도 한 장이 놓여 있었다. 지도의 끝에는 선대륙을 넘어선 '상계(上界)'의 존재가 암시되어 있었다.

진운은 부러진 검을 쥐며 차갑게 미소 지었다.

"현기 도인, 그리고 나를 멸시했던 선문(仙門)들이여. 범인의 역습이 이제 시작된다."

지하 보고의 문이 다시 열리기 시작했고, 진운의 신형은 안개 속으로 유령처럼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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